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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o
655 Words / 1 Recordings / 2 Comments
Note to recorder:

자연스럽고 부뜨럽게 해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순례자의 노래 (첫부분)

오정희 눈이내리고있었다. 아침부터내리는눈이었다. 혜자는창문을열어놓고
창틀에 올라앉아 천지를 어지럽게 흔들며 편편이 쏟아져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기 때문인가, 들려옴직한 작은 소음까지 묻혀버린 듯 동네는 조용했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담 안으로 날아들어온 야구공을 넘겨달라고 소리치거나 몰래 담을타넘는아이들의소리도들리지않았다. 문간방에세든처녀마저일터로 나가고 나면 통상적으로 비어 있기 마련이었던 집이어서 생겼을 것이 분명한, 동네아이들의,담을타넘어들어오는버릇은쉽게고쳐지지않았다. 집에돌아온 첫날,
마루문에 기대어 지켜보는 그녀를 흘끗거리면서도 유유히 담을 타넘는 사내아이를 날카롭게 불러세웠을 때 그애가 불만스레 내뱉은 말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던 것은 혜자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지껏 맨날 그랬단 말예요. 다른애들두요. 집안에
사람이 없으니 어떡하란 말예요. 안도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마 적어도 그녀의 집이 흉가이거나 마음씨 고약한 거인이 지키는, 저주받은, 황폐한 정원은 아니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잎떨군 나뭇가지에 무겁게 얹힌 눈이 가끔 툭, 툭,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그 서슬에 눈위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던 참새들이 포르르 날아올랐다. 문간방에서 대문으로 이어지는 곳에 발자취가 없는 것으로 보아 문간방 처녀는 아직 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혜자는희게눈덮인마당으로내려가눈을한움큼쓸어쥐었다. 발목까지 눈속에빠졌다. 이대로눈이내린다면저물기전무릎까지쌓이기쉬울것이다. 눈을 쓸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혜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어느 집에선가 피아노
소리가들려왔던것이다. 한손으로서툴게간신히멜로디만잇는노래를혜자는 조그맣게 따라불렀다.
산도 들도 나무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일 거예요. 하아얀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혜자가 어린시절 불렀고 그녀의 아이들 역시 어릴 때 부르던 동요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한가롭게 빈집을 지키던 어느 젊은 엄마가 내리는 눈발을 보며 흘연히 솟아오르는 어릴 때의 멜로디를 좇아 건반을 두드리는
것이리라.
피아노소리는갑자기그치고혜자는노래를부르던그대로입을벌린채 우두커니서있었다. 문득지난밤의꿈을떠올린것은사라진소리에서비롯된 깊은 정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밤, 그녀는 꿈을 꾸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그리고어른이되고나서도종종꾸던꿈이었다. 꿈에는늘같은길을간다. 이제는 잊혀지고 버려진 옛 성벽처럼 퇴락하고 이끼낀 돌담이 끝없이 이어지고 돌담을 따라 걸으며 혜자는 꿈속에서도 여기가 어디던가, 그전에도 왔었는데 하며 너무도 익숙한 분위기에 친근하게 중얼거리곤 했다. 돌담을 따라 한없이
가다가 어디쯤에서
닳아지고 부서진 들틈에 손을 넣으면 틀림없이 그 언젠가 약속과 맹세의 뜻으로 넣어둔 작고 예쁜 단추알 비밀의 표지, 조그맣게 접힌 종이쪽지 따위를 찾아내리라는예감과확신으로하냥걷다가꿈은깨이곤했다. 꿈은시작도끝도 종잡을 수 없는 하나의 길, 헤매임이었을 뿐이었지만 꿈을 깨임이란 또 역시 줄곧 따라가던 길의 잃음에 다름아니어서 혜자는 잠을 깬 후에도 미아처럼 막막하고 안타까운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하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그리고 또한 그 익숙한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귀신처럼 늙어 살고 있는 어머니라면 그게 바로 저승길, 혹은 전생 (前生)의 길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한마디로명쾌히대답할것이다. 근이년가까이잊고있던꿈을다시꾸기 시작한 것은 확실히 집에 돌아왔다는 자기암시, 확신일 것이다.
손이 차갑게 얼어들어왔다. 쓸어쥔 눈이 손안에서 녹고 있었다. 헤자는 젖은 손을 문지르며, 발을 굴러 신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방과 마루는 한껏 어질러져 있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벗어던진 잠옷이며 물컵, 걸레,트랜지스터라디오따위가밟혔다. 당연했다. 일주일전집에돌아온이래 그녀는집안일에전혀손을대지않았다. 늘아귀처럼달려드는허기로어쩔수 없이 밥은 지었으나 설겆이는 내팽개쳐 두었다. 욕조에 더운 물을 채워 한기가 느껴질 만큼 물이 식을 때까지 몇시간이고 몸을 담그고 들어앉았고 욕실에서 나온알몸그대로불을끈마루에서서성이기도했다. 엊그제그녀는집뒤편 마당의 시멘트 갈라진 틈에서 딸아이의 노란 꽃핀을 주워 그것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냈다. 중학교 졸업반이 된 딸애는 이미 오래전에 꽃핀 꽂을 나이가 지났다.
한 달 전까지 남편과 두 아이, 살림을 보아주던 시모 (媤母)가 살던 집이었지만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의 살림살이만 고스란히 남긴 채 말끔히 비워져있었다. 퇴원을앞둔그녀의거취에대해많은논란과숙의가있었겠지만 이미 호적정리까지 깨끗이 마친 그녀에게 집을 내주기로 한 것은 그쪽으로서는 대단한 배려였을 것이다. 담당의사로부터 언제든 퇴원해도 좋으리라는 통고를 받자, 남편은 말했었다. 곧 집을 비우기로 했소.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으면 팔고작은아파트를얻는것도한방법이될거요. 내생각이긴하지만그편이 여러모로좋을것같소. 집이팔릴동안임시로친정에가있는게어떻겠소. 그날 이후 혜자는 남편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로서는 이혼한 전처에 대한 예를 다한 셈이었다. 표면상으로는 그녀가 원한 이혼이었고 그 역시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녀가 병원에 있는 동안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을 괴로와한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퇴원하는 길로 이 집으로 들어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당신은 심신이 아주 건강하다. 그전처럼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의사는 말했었다. 긴 여행 뒤의 휴식처럼 그녀는 극도의 게으름 속에 자신을 풀어놓았으나 이따금 울리는 전화벨 소리, 이제는 이곳을 떠난 남편과 아이들을 찾는 소리들은 소스라치는 현실감으로 그녀를 일깨웠다. 없어요, 이사갔읍니다, 모르겠는데요. 짤막하고 무뚝뜩한 대꾸로 전화를 끊고 나면 그녀는
미친듯그들이남긴흔적을찾아집안을뒤졌다. 그것은마치그녀가떠나있던 시간들을지우려는노력과같았다. 벽에붙인스티카,빗살에낀검고윤기나는 긴 머리칼, 한귀퉁이에 수놓은 손수건 따위 흔적은 어디서나 발견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와 그들 간에 놓인 엄청난 공백을 강하게, 생생하게 인식시켰고 그들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되찾을 수 없는 시간들임을 상기시켰을 뿐이었다. 어쩌면 더 깊은 사랑으로 굳게 맺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의 가슴 밑바닥에 단단히 도사린 수치심과 두려움을 숨길 수 없을지라도, 한바탕 집안을 휘젓고 난 뒤면 그녀는 무릎을 싸안고 소리죽여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기진할 때까지 울고 나면 텅 빈 위장의 속쓰림, 오랜 벗처럼 친근한 허기증이 달래듯 부드럽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Recordings

  • 순례자의 노래 (첫부분) ( recorded by agawee ), unspecified ac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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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agawee
April 15, 2013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anno
April 15, 2013

네^^ 열심히 해야 겠죠. 도움을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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