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peed please
내가 이사를 오고 나서 처음으로 여동생이 우리 집에 방문했다. 동생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사는 동네가 우리 동네와 꽤 멀어서 서
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새로 살게된 집은 거실 하나와 방 두 개가 있었고, 앞에는 공영 주
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 설치된 CCTV가 24시간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집은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새 집에는 곰팡이나 벌레도 없었다. 동네가 조용한 것과 주변에 아름다
운 꽃들이 피어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집을 둘러본 동생은 안심했고, 우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휴대폰 사진첩을 열었다. 거기에는 어렸을 때 엄마가 찍어주신 사진들
이 있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다.
한 사진 속에서 우리는 패션쇼를 한다며 화려한 색상의 보자기를 두르
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사랑했던 강아지를 껴안고 쓰다
듬는 모습도 있었다. 우리 삼남매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를 거
실에 세워두고 춤을 추다가 찍힌 사진은 특히 압권이었다.
당시 우리는 거울 앞에서 러닝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있었
다. 엄마가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때 나는 복장때문에 급격히 소심해졌
지만 동생은 아주 개성있고 당당한 포즈를 선보였다.
사진을 보고난 후, 동생이 배고파했다. 나는 전기밥솥에 미리 쪄둔 단
호박을 동생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동생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니
가 요리도 할 줄 알아??”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었나? 단호박을 찌는
것을 요리라고 하기에는 만드는 게 너무 간단했다.
그것도 내가 한게 아니라 밥솥이 다 한 요리였다. 하지만 동생은 이 사
실이 무척 인상깊었는지 나중에 엄마께 전화를 걸어서 이를 알려드렸
다.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 집에 있을 때에는 거의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
다. 고등학생 때에도 급식을 제공하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요리를 할 일이 없었다. 예전에는 내가 간단한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도 맛이 없어서 동생들이 먹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의
감탄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계란말이도 할 줄 알고 참치볶음밥, 김치전, 콩나물
국도 끓일 줄 안다. 친구와 함께 살면서 매일 거르지 않고 아침 식사를
돌아가며 준비했고, 그로 인해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 집에서 산지도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내가 인테리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기에 상아빛 벽지로 도배를 했
었다. 집의 분위기는 카페처럼 우중충해졌고, 나는 교회 형제자매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흰색 벽지로 다시 도배해야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흰 벽지가 다시 누리끼리해져서 불을 켜도 집 안
이 침침했다. 특히 가스레인지 근처의 벽지와 현관문 옆 벽지는 기름
때와 손때로 새 단장이 절실했다.
다른 교회 식구들을 초대하는 것을 목표로 나와 친구는 집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이서 틈틈이 도배를 했다. 풀을 만들어 벽지에 바
르는 데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풀바른
벽지’를 구매했다. 확실히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도배를 하고 난 후에 가스레인지 근처의 벽에는 기름때 방지용 시트지
를 붙였다.
집이 지어진 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전기 소켓도 색이 누렇게 바래있
어서, 우리는 흰 페인트를 사서 소켓도 하얗게 칠했다. 우리는 내친 김
에 검은색 책장과 거울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색 나무 테두리도 흰 색
으로 칠했다. 집 안의 분위기가 훨씬 산뜻하고 단정해졌다.
우리는 화려한 포인트 벽지로 한쪽 벽만 도배하여 방을 더 화사하게
해 보려고 했지만, 그 작업을 하고 있을 시간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 전체를 틈틈히 도배하는 데에 거의 몇 주가 걸렸다. 그래서 비교적
간편한 스티커식 포인트 벽지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인터넷으로 볼 때에는 고급스럽고 예뻤는데, 실제
로 도착한 상품은 할머니 방에 있을 법한 촌스러운 홍매색의 꽃들이었
다. 우리는 이런 것에 안목이 있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고 결국은 과
감히 스티커를 버리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집을 도배하고 꾸미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
지만, 끝내고 나니 집 환경도 새로워지고, 도배의 경험도 했다는 생각
에 보람이 느껴졌다.